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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Dream

[독서후기]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장편소설)

by 하이디필~굿 2023.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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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연일 인터넷 서점 등에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의 수위를 차지하는 책이다.  고전 위주의 책을 즐겨읽었던 나이지만, 이 책은 소개글만 보아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즐겨 다니는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계속 '대출중'이어서 예약을 신청했다.  예약 번호도 몇십 번 후라서, 금년 안에 보기는 어렵겠나 싶었다.  한 번 빌려가면 2주는 있다가 돌아오는 책을 몇십 명이 다 읽도록 기다리라니...  그래도 책은 내 손에 들어왔다.  아마도 독자들에게 인기있는 책이라서 도서관에서 추가 구입을 하지 않았나 싶게, 새 책으로 내 손에 받아 들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저자
정지아
출판
창비
출판일
2022.09.02

소설의 화자인, 스스로를 '빨치산의 딸'이라고 말하는 <아리>는 뼈속까지 사회주의자(요즘은 이렇게 말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공산주의자라고 했을 터이다)이며 '민중'이라는 말에는 세상 모든 것을 기꺼이 뒤로 물리는 부모님 슬하에서, 남다른 이데올로기적 지긋지긋함을 가지고 나름 꿋꿋하게 살아왔다.

 

치매를 앓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혀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신 과거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 주변의 (어쩔 수 없이) 알고 있었던 인물들, 또 난생 처음 보게된 사람들을 아리는 외동딸인 상주로서 만나게 된다.  기억과 사연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온 현실의 장례절차와 함께 아리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이야기는 어려울 것도 없고 복잡할 것도 없이 무난히 아버지의 생애를 더듬어 훑어 나간다.

 

어렸을 적에는 둘도 없었던 <사랑>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었던 아버지와 딸이었는데, 부모님의 이데올로기와 동떨어진 현실에 대한 반항으로 애써 외면하던 아버지의 속내를, 아리는 그리 적지도 많지도 않은 등장인물의 증언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그분을 보내면서, 빨치산도 사회주의자도 아닌, 동네 심부름꾼도 아닌 아버지를, 진정으로 한 시대를 살아나가야 했던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게 되는 아리가,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늦철들은 심경을 대신해 주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 마음을 전하며 이 소설을 아버지에게 헌정하고 있다.

 

소설은 전쟁과 이념의 소용돌이에서 살아 남은 인생들과, 살아 남지 못한 이들을 보내고 많은 상처와 한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필자의 수기 마냥 써내려가고 있지만, 나는 거기에서 저자와 깊은 공감을 하게 된 부분이 있다. 

 

아리가 아버지의 죽음에 맞닥뜨려서야 아버지가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듯이, 나도 내 아버지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었던 사실이다.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게 되는 그 장례기간 몇일 안에 나에게 아버지는, 그간 생각해본 적도, 느껴본 적도, 표현해본 적도 없는 '사랑(父情)' 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졌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 세대로부터 전쟁(6.25 전쟁)의 이야기를 많이도 듣고 자랐다.  피난민이 어떻고 배고팠던 경험들... 옆에서 누가 죽어가더라는... 누구는 고아가 되고, 하루 아침에 친구가 원수가 되는 살육을 목도하기도 하고 ...

 

그럼에도 인간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아 생존해서 우리에게 전쟁이 얼마나 무서우며, 이제 다시는 있어서는 안될 것임을 깨우쳐 주는 부모님의 세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며, 나만 그렇지는 않을 일인 듯, 죽음의 앞에서 맞닥뜨려지는 <사랑>에 대한 의미를 새겨보게 해준다. 

 

작가 정지아 선생의 부친께서 부디 딸의 품에서 기쁜 안식으로 거듭나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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