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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1890~1918)의 자화상을 보면, 괴기스러울만치 왜곡된 형태와 색으로 표현된 것도 있지만, 위의 자화상(1910)과 같이 댄디한 모습을 가진 것도 있다. 실제로 그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 취하기를 즐겼다고 한다.
유난히 자기 모습을 그림의 소재로 삼기 좋아했던 에곤 실레의 자화상(200여점이나 된다고 함)이나 그의 사진을 보면, 한 때 반항하는 젊은이의 아이콘이었다는 제임스 딘(1931~1955)이 생각난다. 20대에 생을 마감한 것도 두 사람의 공통된 점이다.
- 평점
- 8.7 (1999.07.10 개봉)
- 감독
- 니콜라스 레이
- 출연
- 제임스 딘, 나탈리 우드, 살 미네오, 짐 배커스, 앤 도런, 코리 앨렌, 윌리암 호퍼, 로첼 허드슨, 데니스 호퍼, 에드워드 플랫, 스테피 시드니, 마리에타 캔티, 버지니아 브리삭, 베벌리 롱, 이안 울프, 프랑크 마졸라, 로버트 폴크
2019년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미술관에서 에곤 실레의 그림들을 보고, 정말 한참을 들여다보며 대화를 해야 할 그림이라고 느꼈는데, 일행도 있고, 더 봐야 할 전시실도 많고 해서 맘껏 누릴 수가 없었기에, 다음에 느긋하게 살펴봐야겠다 생각하고 사진을 찍어 두었었다.
<포옹>
이 그림은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실레가 1915년 에디트와 결혼한 후이므로 실레 부부가 모델이었음직 하다. 실레는 에디트와 결혼한 지 나흘 만에 (당시 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전쟁 중이었으므로) 징집이 되어 아내를 데리고 여기저기에서 군생활을 했었고, 재능을 인정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용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 때문일까, 두 사람의 모습이 강렬하게 표현되기는 했어도 이불(시트)에 깃발의 모양이 있는 것 하며, 불안한 심리적 요소가 엿보인다. 이 그림을 보고 정서적 충격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징그럽다'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는데, 피부의 색에 실레가 (특히 자화상에서) 녹색을 즐겨쓰는 것이 일반 관객의 눈에 시신이나 그런 섬뜩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과 소녀>
아내의 죽음을 암시라도 한 걸까? 실레의 아내 에디트는 1918년 임신을 해서 가정을 꿈꾸게 되었지만, 1918년 10월 임신 6개월의 태아와 함께 스페인 독감으로 에디트가 죽고, 실레도 사흘 후 같은 병에 감염되어 죽게 된다. 그림에서 죽음의 사자가 소녀의 머리채와 어깨를 강하게 거머쥐고 있다. 소녀의 다리는 저항하고 있고, 그의 갈라진 치마자락이 모종의 싸움을 암시하고 있지만, 죽음의 손에 거의 가려진 소녀의 팔은 너무도 힘없이 가늘게만 보이고, 압도적인 죽음 앞에 소녀는 흰색 천의 외부로 상징되는 다른 세계로 이끌려가는 모습이다. 그림의 배경에서 알 수 없는 색과 형태의 세계가 피안의 길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두 아이와 함께 있는 어머니>
이 그림과 아래 가족의 그림에서 보면, 실레는 어머니라는 역할과 모성에 대하여 대단히 큰 연민과 서러움을 갖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두 명의 색동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이 무언가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과 근심으로 어두워져 있다. 어머니의 무릎에 얹어진 하얀 천에 알 수 없는 접힌 무늬가, 색동옷의 아기들과 대조되며, 아이들이 생기있는 붉은 안색을 가졌음에도 어머니의 근심을 반영하듯 무표정의 그늘이 드리워있다.
<가족>
실레 자신을 그린 것이 틀림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뭔가 활기와 희망으로 벅차보이는데, 이에 대조적으로 여인(어머니)는 먼데를 바라보는 눈길에 근심이 가득하다. 원래 이 그림에는 아기가 있는 자리에 꽃이 그려져 있었다가, 실레가 아기를 기대하게 되자 꽃 대신 아기를 그려넣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기가 유럽 혈통의 아기 같지가 않다. 오히려 중국화에서 나옴직한 얼굴 내지 일본 아이를 그린 것 같다. 당대에 비엔나에서 일본 문화가 유행처럼 각광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영향일까? 내 눈에는 아무래도 아시안 아기 또는 탱화 같은데서 나오는 아기 부처의 형상 같은 느낌이다.
놀랍게도 실레와 같은 해에 사망했지만 실레(28세)보다 딱 두 배의 나이(56세)만큼 살다 간, 실레의 스승이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기 그림(아래)에도 유사한 모양으로 그려진 아기가 등장한 것을 발견했다. 클림트 그림의 아기도 실레의 아기와 같이 어린 아이의 표정은 찾아보기 힘든 어른 같은 표정이며, 시선은 아래를 바라보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다만 실레의 그림에서는 어색하리만치 아기의 위치가 맨 아래인 반면,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요람인지 이불인지 잔뜩 쌓아올린 어떤 형체의 맨 위에 아기가 위치하고 있는 점 대조가 된다.
p.s. 그림에 대한 감상은 전적으로 하이디의 주관적인 생각을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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